22.7.27 12:40 수요수련, 남한산성 숲 속 쉼터, 카페 가배산성

 

몸을 잘 다스리는 것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이요,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몸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몸이 소중하다. 여기서 몸이란 육체적인 몸과 정신적인 몸을 함께 말한다. 마음자리는 정신적인 몸에 있다. 몸은 항상 마음이 주도한다. 육체적인 몸과 정신적인 몸은 겹쳐있으며, 하나는 하드웨어고 하나는 소프트웨어이고 마음자리는 운영체제라고 보면 된다. 몸에 있는 여섯 감각을 통해 이 세상이 구성되고 마음이 작동한다. 육체적인 몸이 없으면 오감각의 세상이 없고 오문의 마음 작용이 멈춘다. 이 몸이 잘 작동하려면 살아온 습성이 좋아야 한다(kamma, 業). 그러나 우리는 오염된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 성향대로 마음이 일어나고 무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이 반응하여 살아간다. 그래서 오염된 마음으로 행한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우리는 불만족스럽고 불안정하고 허기진 상태로 살아간다. 고요하지 못하고 차분하기가 어렵다.

 

몸은 즉, 육체적인 몸이나 정신적인 몸은 매 순간 변하는 존재다. 동사다. 명사가 아니다. 매 순간 변하는 동사는 살아있음이요, 변하지 않는 명사는 죽어있음을 의미한다. 고정된 실체[명사, 有身見]로 나를 정하면 여러 가지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고정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마치 흘러야 할 물이 얼어붙은 것처럼 자연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 삶에서 우리는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번뇌가 일어나고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 혜안을 얻기 어렵다. 세월이 흐르면 몸이 늙어가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므로 이것을 머리로는 잘 이해해도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세상은 나 좋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anicca). 모두 함께 관계론적이고 연기론적으로 돌아가며 각 개체도 그와 같은 이치로 돌아간다. 그래서 노자 선생께서 일찍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셨다. 

 

오늘은 초보입문자가 보법을 연습하는 날이다. 허와 실이 분명해야 한다(허실분청虛實分淸). 한쪽 발로 체중이 실리고 다른 한 발이 들리면 중심잡기가 힘들어진다. 안정된 중심 확보를 위한 노력만으로도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른 자세만으로도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한다. 내가 하는 것이라 여기지 말고 몸이 한다는 것을 이해하여 몸을 도와야 한다. 목표를 정해서 내가 억지로 만들어서는 좋은 움직임이 아니다. 나의 움직임은 가장 경제적이어야 한다. 팔을 들어 올릴 때는 팔의 무게만큼만의 힘을 써서 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몸을 돌릴 때는 오직 허리만을 움직여야지 상체를 움직여서 돌린다면 비경제적이다. 걸을 때는 골반이 주도해야 한다. 앉고 설 때는 고관절만을 사용한다는 의념意念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일 때는 반드시 요결要訣[지시어, 디렉션, 의념意念]이 따라붙어야 한다. 얼굴에 힘을 빼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어깨를 가라 앉히고, 몸통을 반듯이 세우고 척추를 위로 늘리고, 가슴을 풍성하고 부드럽게 하고, 목은 자연스럽고, 머리는 기울어지지 않고 반듯이 얹혀있어야 한다. 하나의 움직임에 고려사항이 많지만, 자주 하다 보면 익숙하게 되면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는 딴생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때는 불필요한 생각이 일어남을 알고, 하던 움직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지 상태도 움직임의 하나다. 행주좌와行住坐臥도 움직임이다. 어묵동정語默動靜도 움직임이다. 몸이 있으면 움직임이 있다, 그것을 생명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몸을 움직일 줄 안다. 과연 최선의 움직임이란 무엇일까? 

 

남한산성 쉼터 수요수련
남한산성 수요수련 삼각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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