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에
대학에 갓 들어간 첫 해 여름방학 때
친구와 둘이서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영어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서머셋 모옴의 단편집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재능이 탁월해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정말로 재미있게 엮어냅니다.
snobbism이라는 단어가 지금도 떠오릅니다.
더운 여름 서울생활이나 소설 속 세상이나
다 현실 같았습니다.
꿈이 많았고
희망이 있었고
기대가 충만해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속물이 아니었고
속물이 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교양과 격조가 있는 젊은이 였습니다.
재미있는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며칠 전
범부라는 낱말을 보다가,
욕계 세상의 욕망을 읽다가,
욕계에 살면 품격이 있고
욕계에 살면 비루하고
욕계에 살면 속물이구나!
내가 욕계에 살고 있는 사실을 잊습니다.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듣고 보고
맡고 맛보고
전신을 늘 휘감는 느낌을
순간 순간!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욕계를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을 알아야겠습니다.
50년 후 지금
늙은 속물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꿈꾸지 않고
기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