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만두시내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단체여행신청. 스페인 영국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 독일 한국인 다민족들이 구성된 30명 정도. 버스와 짚차 한대씩.

2007.8.4 첫날 KTM-Kodari-Zangmu-Neyalam
카투만두시내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단체여행신청. 스페인 영국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 독일 한국인 다민족들이 구성된 30명정도. 버스와 짚차 한대씩. 코다리에서 출국수속하는데 기다리고. 중국티벳입국하는데 기다리고. Neyalam까지는 계속 오르막 길. 한밤중에도 달리고. 아슬아슬 한 경지가 많다. 거의 2000m를 수직상승 4000m 고원에 당도. 아주 허술한 GH에 침낭을 덮고 쓰러지다. 아직은 고산증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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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둘째날 Neyalam-Tingri-Lhatse
빈약한 도로상태. 하늘은 맑고. 쌀쌀한 가을날씨. 몸 피로해지고 머리 아파옴. 밤늦게 GH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 기진맥진, 전형적인 고산병증세. 두통 구토증 굉장한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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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세째날  Lhatse-Xigatse
오후에 시가체에 도착하니 도시에 들어온 기분, Tashilumpo 사원을 구경. 오후 늦게 부터는 고산증세 조금 누그러짐. 사원 분위기는 크게 위축되고, 중국정부의 통제로 거의 박제화 된 느낌이다. 기운을 차려 한국 젊은 일행들과도 함께 식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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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7 네째날  Xigatse-Gangtse
길이 아스팔트, 200여km를 단숨에 달려 정오쯤 강체에 도착. 3시부터 백거사를 들러보다. 힌두교가 많이 혼합된 느낌. 수도원이라기 보다는 관광명소가 되다. 돌면서 방을 하나씩 들르면 부처나 신들이 모셔있는 상들이 있다. 참으로 많다.
4000m 고원지대. 주위는 민둥산. 건조. 조그만 걸어도 숨이차고 피로함. 맥박 100으로 상승. 샤워하고 가만히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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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다섯째날  Gangtse-Lhasa
맑고 구름. 이리저리 돌아 하루종일 차를 타다. Yamdrok Tso를 버라보는 전경이 좋음. 저녁 늦게 라싸에 도착. 한족들의 대중식당에서 식사. 고산증세가 야간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피로. 계속 감기약 복용. 목욕도 못하고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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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여섯째날 Lhasa (Drepung Monastery, Sera Monastery)
오전엔 드레풍사원을 . 오후엔 세라사원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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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일곱째날 Lhasa (포탈라궁, 조강사원)
새벽에 조강사원을 들르다. 티벳인들이 밤새도록 기도한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무엇을 간절히 빌었을까? 조국? 부처? 현실? 오직 자신의 모습만을 여실히 관찰하고 있을까? 수많은 이들의 표정과 기도의 모습들이 강하게 사로잡는다. 포탈라궁 입장은 결코 쉽지 않았다. 궁은 보물로 가득찬 듯 대단한 궁전이였다! 릭샤의 바가지는 조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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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일곱째날 Lhasa -> 카투만두


티벳 라싸는 빠른 속도로 한족화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장족은 가난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리고.
카투만두에 도착하니 고산증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고, 식욕이 돋는다.

2007년 8월 1일 도착 2박3일
대성석가사에서 숙박, 카투만두보다 해발이 낮아 고온다습.
넓직한 곳에 터를 잡아, 세계각국 사원들이 들어서 있슴.
아주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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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룸비니에는 평화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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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태어난 곳에 붉은 벽돌의 건물이 세워져 보호하고 있고, 밖에는 한 때 수도원자리 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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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왕이 세웠다는 그 유명한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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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 들어와 이근방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이 풀을 베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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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성석가사'


룸비니에는 세계 각국의 사원들이 들어서 있는데, 한국의 '대성석가사'입니다. 식객들이 가장많이  머물고 있어요. 건너편 붉은 건축은 중국사원. 아직 기와를 올리지 못하고 있고, 대웅전 건물은 아주 아주 큽니다


(2007년 7월 9일 월요일)

오후에 앙코르 사원이 있는 시엠립을 향하다. 공항에 도착해서 툭툭을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밤 풍경 속에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식당이 무척 많다. 물론 툭툭과 여행객으로 보이는 각종 외국인들이 어수선하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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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5시에 앙코르왓을 향하다. 사원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장구한 천년의 세월의 흔적이 여기 저기 돌마다에 보이는데, 여기 오늘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태양빛으로 말미암아 그때 왕들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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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이곳 옛 사원을 찾은 나를 멀리서 눈짓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오늘 하루 불상을 정돈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온통 힌두교의 신들이 조각된 이곳에 가장 중앙 성소에 조그만 불상이 자리하고 있고, 이 노파가 그 옆에 있다. 나도 향을 피웠고, 1달러 지폐를 올려 놓았다. 아직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 시간은 조용하다. 향냄새 연기가 옛 신전을 감싸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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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힌두교 신전이다. 자야바르만7세는 불교를 신봉해서 불교의 신전과 사원이 새워졌지만 거의 힌두교의 신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머니의 미소는 그 옛날 크메르 여인의 미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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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나와 함께 했던 툭툭이 기사. 24세. 오손. 등번호 4260. 똑똑하고 다정하다. 나를 너무 젊게 본다. 그래서 친구처럼 지냈다. 하기야 하루밤 $15짜리 Golden Temple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있다 보니, 투숙객 대부분이 2-30대 젊은 배낭객이 대부분이다. 내가 새벽에 출발하니까 잠을 별로 못잤을 텐데, 별로 싫은 그런 기색이 없다. 아침을 안 먹었어도, 물어보면 늘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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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에는 압사라라는 무희가 가장 많다. 모든 신전과 사원에는 예외 없이 요염하게 보이는 압사라 춤을 추는 여인들이 조각되어 있다. 라가라는 뱀은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형상이 있다. 사자상도 많다. 이들 상들은 힌두교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다음으로 사원을 지은 왕의 얼굴상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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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티셔츠나 향, 앙코르 안내 책을 파는 이들이다. 그 중에 어린 소녀들이 많다. 이들을 가만히 보면 압사라의 얼굴하고 똑같다. 그늘에 잠시 쉬고 있으면서, 그녀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끈질긴 구매를 강요당하지만. 물건을 사는 대신 1달러씩을 주고 가장 잘 부르는 노래를 둘이 함께 불러보라고 했더니, ‘유아 마이 선샤인’을 합창했다.  박수를 치고 잘 불렀다고 했더니, 한 곡을 더 불렀다. 힌두교 신화의 압사라는 신들을 위해서 춤추고 노래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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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이나 사원을 짓는 건물의 입구나 기념건물에 당시 왕의 얼굴이 여러개 씩 조각되어 있다. 그 당시 왕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 짐작이 간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생각난다. 일주일 전에 구경했던 만리장성도 생각나고, 자금성, 이화원도 생각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다 보여 준다. 천년전 왕들의 시대에는 신의 영광도 있었겠지만, 백성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신을 잘 못 알고 섬기면 그 부작용이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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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바위틈에 씨앗이 날라 들어가 싹을 틔우고, 좁은 틈으로 나무가 자란다. 습기와 바람을 따라 가지를 뻗으니, 거대한 신전은 나무와 함께 어우러지고 만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자연의 섭리란 말인가. 이것이야 말로 신의 섭리가 아닌가? 지금 이 순간 거대한 형상과 위대한 영광과 영원한 절대자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저 밑바닥에서 누군가의 마음 속에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지난날의 욕망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을 법도 하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또 반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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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무너져 내리는 앙코르의 한 탑이 그림자가 되었다. 저 태양 속으로 앙코르의 모든 영광은 사라져 갔다. 이곳 앙코르를 찾는 사람의 가슴속에 다시 앙코르가 만들어 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앙코르신전을 만들고 있는걸까?

2007년 7월 시엠림에서

2007년 5월 29일 화요일.
캄보디아의 서쪽 끝 항구도시 시하눅빌로 가까이 가자 비가 내렸다. 5월말인데 우기가 벌써 시작인가. 좀 빠른 듯한 느낌이다. 메콩익스프레스 직행버스, 차 안에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좀 있고 빈 자리가 많다.

200여 킬로미터를 4시간 걸려 작은 해양도시 해변 마을에 도착해서 여장을 푼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레니티 해변가

다음날부터 비는 오지 않았다. 햇볕은 쨍쨍~.

오츠띠알 비치에 있는 한 그늘막에 않아 먼 바다를 바라본다. 이 바다 저 멀리 서쪽에는 태국 푸켓과 만날 것이다. 아열대 해양성 기후. 햇볕은 뜨겁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면 견딜 만 하다. 물속에 들어가면 차가운 느낌은 나지는 않는다. 완만한 모래 경사다. 해변가 모래는 아주 곱다. 계속해서 해변가 백사장을 왔다 갔다 하는 파도를 바라본다.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그 육중한 바다의 몸짓을 보여주면서, 부드러운 바람을 날려보낸다. 내 마음은 이미 내 곁을 떠나 이들과 함께 즐겁게 춤추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변 풍경

그물망에 누워 바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한다. 서양남자들, 여자들, 남미계통인지 중동인지 모를 인물들, 스님들, 물건 파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 해변은 이미 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물결소리는 이미 수 만년부터 들어온 친근한 소리가 되었고, 먼 아득한 고향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변의 여인들


시선을 멀리 하고 무얼 바라보는 것일까? 우리의 발걸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알고 싶어하는 우리는,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모두 동원해서 이 숙제를 풀고 있으나,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문제의 답이 나의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피서나온 젊은 스님들


낮에는 한 시간 거리의 인근 섬을 투어 하는 배를 타고 나간다. 20명 남짓 승객은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햇볕은 강하고 바람은 부드럽다. 어슬렁거리면서 섬에서 두 세시간 보내다 돌아온다. 서구인들은 햇볓을 좋아한다. 알몸으로 태양 빛을 맞아도 괜찮은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하눅빌 항구

시하눅빌 항구가 있는 곳으로 하루는 툭툭을 대절해서 나간다. 항구에는 멀리 태국에서 온듯한 여객선도 보인다. 항구는 한가해서 정지해 있다. 하늘 구름만 조금 움직일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뜨레알 비치

하루는 가장 한가한 오뜨레스 비치를 찾아 해변에서 책을 보며 지낸다. 고엥카지의 10일 담마 법문집은 아주 간결한 표현과 비유와 유머가 있어 좋다. 번역보다는 영어원문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비록 늦은 나이지만, 이런 좋은 글과 스승들을 만났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평생 동안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데에 익숙했던 내가, 진정으로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자신과 세계를 알고자 할 때, 과학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종교나 정신세계를 잘못 따른다면, 궁극적인 원리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것도 알았다. 알아가면서 사는 기쁨, 이것은 무엇보다도 견줄 수 없는 큰 행복이지 않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지막 날 아침 새벽에 해변가에 나가 해 뜰 때의 모습

새벽에 해변에 나가면 서늘한 바람도, 한가한 백사장도, 여유로운 파도소리도 좋다. 모래 위에서 태극권을 하려고 나왔지만, 풍광이 나를 사로 잡아, 카메라를 들고 해가 뜰 무렵을 기다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시간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밤 늦도록 술에 취해 덜 깬 듯 보이는 이도 있지만, 아침 이 기운이 좋아서 나온 사람들과 그물을 들고 고기 잡는 사람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 뜰 때의 반대편 서쪽 구름 모습

지금 이 아침 시간에는 가난함과 넉넉함이라는 것이 없다. 다시 해가 뜨고 사람들이 백사장에 모이면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모인다. 어제 돌다가 만 영사기가 다시 돌아가듯.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한국의 일들이 아련히 느껴진다. 파도소리만 들린다.

2007년 6월 초 시하눅빌 해변가


2007년5월16일-27일
캄보디아 바탐방
국제위빠사나명상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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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에 버스에 내여 다시 오토바이 뒤에 타고 20킬로 들어가는 – 위빠사나 명상센타 가는 길)

‘ 바탐방’은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300km 떨어진 도시입니다. 거기서 다시 모또를 타고 20여km를 들어가면 ‘프놈 쏨 뻐’라는 산 가까이에 명상센터가 있는데 ‘International Vipasana Center’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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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날 아침 7시쯤. 담마홀 전경. 한국보다는 수행환경이 훨씬 좋습니다. 이곳 경제 수준을 볼 때 이러한 센터가 설립된 것은 대단한 열정이라고 봐야합니다.)

전체 약 150명 가량의 수행자들이 11박12일 동안 고엔카 방식의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했습니다.

남자 수행자 20명, 남자 스님 22명, 여자 수행자 45명, 비구니 스님 15명, 자원봉사자 남20명, 여 30명. 이중에 외국인은 나와, 서양 여성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코스가 열리는데 매 코스마다 만원이랍니다.

한 여름 찜통 더위에 버금 가는 기후 속에서 묵언정진을 했습니다. 매일 14시간 이상을 꼬박 앉아 있으면서 집중해야 했는데, 집중이 어려울 때는 정말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낙오되는 사람 한 명 없이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인스트력션이나 챈팅은 고엔카지의 육성 영어 또는 빨리어 녹음을 들려주고 뒤이어 캄보디아어로 통역을 하여줍니다. 그러나 한 시간 반 가까이 되는 긴 법문은 그냥 캄보디아어로 말하기 때문에 외국인은 별도의 방에서 고엔카지의 영어 녹음을 듣습니다. 길지만 이미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썩 좋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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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날 아침 7시쯤 담마홀(법당))

수행을 마치고 각자 사용한 방석을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아무런 장식도 형상도 없습니다. 특별히 절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지도선생의 자리가 약간 높이 만들어 졌는데 스님들의 자리도 마찬가집니다. 일반 수행자들은 방석위에 앉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고엔카 방식의 위빠사나 명상이 대세를 이룬듯이 보였습니다. 이 방식은 느낌을 위주로 보는데, 제가 평소에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전세계 각 나라 거의 대부분 이 방식의 명상센터가 있고, 수행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있어서, 똑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또한 좀 색다른 것은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승복을 입은 스님이 아니지만, 승려들도 똑같이 참여하여 수행하는 모습입니다.

마지막날(10th Day) 오전 10시에 묵언이 해제되면 말 보따리들이 터져나옵니다. Noble Silence(고귀한 침묵)에서 Noble Chating(고귀한 잡담)으로 바뀌면서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입니다. 그날 점심이 제일로 좋은 메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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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날의 게시판. 가장 즐거운 날입니다. 매일 공지사항을 크메르어와 영어로 함께 올려줍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곳의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안팎으로 일어나는 그 느낌을 알아 차립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 느낌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느낌이 변한다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나라고 할만한 것이 따로 없다는 것, 그러나 변하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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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바이, 안녕, 작별인사를 마치고 각자 돌아가는 장면들)

돌아오는 길에 캄보디아인들의 친절함으로 차를 얻어타고 바탐방까지 나올 수 있었고, 예매한 버스티켓을 교환하는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창가에 펼쳐지는 비슷한 풍경을 여섯시간이나 지루한줄 모르고 바라보면서 프놈펜에 돌아왔습니다. 몸은 약해졌지만 정신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2007.5.28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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