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9일 화요일.
캄보디아의 서쪽 끝 항구도시 시하눅빌로 가까이 가자 비가 내렸다. 5월말인데 우기가 벌써 시작인가. 좀 빠른 듯한 느낌이다. 메콩익스프레스 직행버스, 차 안에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좀 있고 빈 자리가 많다.

200여 킬로미터를 4시간 걸려 작은 해양도시 해변 마을에 도착해서 여장을 푼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레니티 해변가

다음날부터 비는 오지 않았다. 햇볕은 쨍쨍~.

오츠띠알 비치에 있는 한 그늘막에 않아 먼 바다를 바라본다. 이 바다 저 멀리 서쪽에는 태국 푸켓과 만날 것이다. 아열대 해양성 기후. 햇볕은 뜨겁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면 견딜 만 하다. 물속에 들어가면 차가운 느낌은 나지는 않는다. 완만한 모래 경사다. 해변가 모래는 아주 곱다. 계속해서 해변가 백사장을 왔다 갔다 하는 파도를 바라본다.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그 육중한 바다의 몸짓을 보여주면서, 부드러운 바람을 날려보낸다. 내 마음은 이미 내 곁을 떠나 이들과 함께 즐겁게 춤추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변 풍경

그물망에 누워 바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한다. 서양남자들, 여자들, 남미계통인지 중동인지 모를 인물들, 스님들, 물건 파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 해변은 이미 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물결소리는 이미 수 만년부터 들어온 친근한 소리가 되었고, 먼 아득한 고향이 되어버린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변의 여인들


시선을 멀리 하고 무얼 바라보는 것일까? 우리의 발걸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알고 싶어하는 우리는,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모두 동원해서 이 숙제를 풀고 있으나,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문제의 답이 나의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피서나온 젊은 스님들


낮에는 한 시간 거리의 인근 섬을 투어 하는 배를 타고 나간다. 20명 남짓 승객은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햇볕은 강하고 바람은 부드럽다. 어슬렁거리면서 섬에서 두 세시간 보내다 돌아온다. 서구인들은 햇볓을 좋아한다. 알몸으로 태양 빛을 맞아도 괜찮은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하눅빌 항구

시하눅빌 항구가 있는 곳으로 하루는 툭툭을 대절해서 나간다. 항구에는 멀리 태국에서 온듯한 여객선도 보인다. 항구는 한가해서 정지해 있다. 하늘 구름만 조금 움직일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뜨레알 비치

하루는 가장 한가한 오뜨레스 비치를 찾아 해변에서 책을 보며 지낸다. 고엥카지의 10일 담마 법문집은 아주 간결한 표현과 비유와 유머가 있어 좋다. 번역보다는 영어원문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비록 늦은 나이지만, 이런 좋은 글과 스승들을 만났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평생 동안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데에 익숙했던 내가, 진정으로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자신과 세계를 알고자 할 때, 과학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종교나 정신세계를 잘못 따른다면, 궁극적인 원리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것도 알았다. 알아가면서 사는 기쁨, 이것은 무엇보다도 견줄 수 없는 큰 행복이지 않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지막 날 아침 새벽에 해변가에 나가 해 뜰 때의 모습

새벽에 해변에 나가면 서늘한 바람도, 한가한 백사장도, 여유로운 파도소리도 좋다. 모래 위에서 태극권을 하려고 나왔지만, 풍광이 나를 사로 잡아, 카메라를 들고 해가 뜰 무렵을 기다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시간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밤 늦도록 술에 취해 덜 깬 듯 보이는 이도 있지만, 아침 이 기운이 좋아서 나온 사람들과 그물을 들고 고기 잡는 사람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 뜰 때의 반대편 서쪽 구름 모습

지금 이 아침 시간에는 가난함과 넉넉함이라는 것이 없다. 다시 해가 뜨고 사람들이 백사장에 모이면 모든 것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모인다. 어제 돌다가 만 영사기가 다시 돌아가듯.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한국의 일들이 아련히 느껴진다. 파도소리만 들린다.

2007년 6월 초 시하눅빌 해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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