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나무숲 사이로 가느다란 달빛이, 걷는 길에 뿌리니, 밝은 부분이 언덕인가 계단인가 조심스럽다. 하늘을 처다보니 숲 사이로 초생인가 그믐인가 조각달이 지나간다. 산길이 깜깜하니 달빛이 밝게도 느껴진다.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내 딛는다. 오직 발 앞만 보게 된다. 숨이 차면 조금 멈추고, 그렇게 오르다 하늘이 크게 보이는 곳에서 천장을 처다보니, 세삼 별들이 많고 또렷하구나.
조건지어진 세상을 잠깐 느껴본다. Saṅkhata를 떠올리며 다시 Saṅkhāra를 그리고 Viññāṇa를 숙고하다가 오온을 생각해 본다.
오늘은 바람이 잔잔하다. 내 마음도 바람처럼 흐른다. 수어장대에 오르니 어스름이 걷치고 여명이 다가온다. 동쪽에 붉은 기운이 느껴지고 나무들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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