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나무숲 사이로 가느다란 달빛이, 걷는 길에 뿌리니, 밝은 부분이 언덕인가 계단인가 조심스럽다. 하늘을 처다보니 숲 사이로 초생인가 그믐인가 조각달이 지나간다. 산길이 깜깜하니 달빛이 밝게도 느껴진다.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내 딛는다. 오직 발 앞만 보게 된다. 숨이 차면 조금 멈추고, 그렇게 오르다 하늘이 크게 보이는 곳에서 천장을 처다보니, 세삼 별들이 많고 또렷하구나. 조건지어진 세상을 잠깐 느껴본다. Saṅkhata를 떠올리며 다시 Saṅkhāra를 그리고 Viññāṇa를 숙고하다가 오온을 생각해 본다. 오늘은 바람이 잔잔하다. 내 마음도 바람처럼 흐른다. 수어장대에 오르니 어스름이 걷치고 여명이 다가온다. 동쪽에 붉은 기운이 느껴지고 나무들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또 다른 세상을 맞이..
다섯 시 반쯤 남한산성 중앙 로터리에 도착해서 침괘정을 통해 수어장대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오늘 토요 수련은 나홀로인지라 천천히 산책하기로 했다. 비는 오지 않지만 비 온 뒤라서 옅은 안개가 깔린 이른 아침 정경이 신비롭다. 몸의 움직임에서 오는 감각을 느끼면서 기분들과 함께 일어나는 생각들을 조금 거리를 두면서 알아차리며 걷는다. 지금 이 순간이 흐뭇해지기 시작한다. 소리, 보이는 것들, 냄새들, 촉촉 함들, 발자국 소리, 숨소리가 나의 세상이 되고 있다. 바른 디렉션, 얼굴과 입 목 어깨에 힘이 빠지고 팔은 덩그러니 달려있고 척추는 자연스럽게 위로 뻗고 가슴은 팽창하되 부드럽다. 천천히 걷는다. 알아지는 것들을 느껴보면서 걷는다. 고개를 오르니 약간 힘이 들고 호흡이 빠르다. 이른 아침 수어장대는 ..